도쿠가와 요시노부
정권을 천황에게 돌려준 마지막 쇼군
AI가 작성한 글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는 에도 막부의 마지막 쇼군입니다. 260년 넘게 이어진 도쿠가와 집안의 막부를 끝낸 사람입니다.
1866년에 쇼군이 되었을 때는 이미 막부의 힘이 많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요시노부는 1867년에 「정치를 천황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대정봉환).
이듬해 신정부군과의 싸움에서 진 요시노부는 에도성을 싸우지 않고 넘겨주었습니다. 덕분에 에도가 전쟁터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시즈오카에서 사진 찍기와 사냥 같은 취미를 즐기며 조용히 살았습니다.
미토 번에서 히토쓰바시 가문으로
요시노부는 1837년 미토 번주 도쿠가와 나리아키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영리하다는 소문이 났고, 도쿠가와 집안의 한 갈래인 히토쓰바시 가문을 이어받았습니다. 1866년 쇼군 이에모치가 죽자 15대 쇼군이 되었습니다.
막부 개혁과 대정봉환
요시노부는 프랑스 공사 로슈의 도움을 받아 군대를 서양식으로 개편하고 막부를 개혁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쓰마와 조슈 번이 막부를 무너뜨리려는 움직임이 더 강해졌습니다. 1867년 11월 요시노부는 「정권을 천황에게 돌려드린다」는 상표를 올렸습니다(대정봉환). 정권을 형식적으로 넘긴 뒤에도 새 정부의 중심에 서려는 계산이 있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도바·후시미 전투와 에도성의 무혈개성
1868년 1월 옛 막부군과 신정부군이 교토 근처 도바·후시미에서 싸웠고, 옛 막부군이 패했습니다. 요시노부는 오사카에서 배를 타고 에도로 돌아와 우에노 간에이지에서 근신했습니다. 사이고 다카모리와 가쓰 가이슈의 회담으로 1868년 4월(음력, 양력 5월) 에도성이 싸움 없이 넘겨졌습니다.
이후의 삶
요시노부는 이후 시즈오카에서 지내며 사냥, 사진, 자전거 같은 취미 생활을 했습니다. 1902년 공작 작위를 받았고, 191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요시노부는 미토 학문의 영향을 받아 천황을 존중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조정과의 관계를 중시했다는 점이 이후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되기도 합니다.
「겁쟁이」인가 「정치가」인가
요시노부는 오랫동안 「유능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도망친 쇼군」이라는 평가와 「내전을 피하고 국가를 지킨 정치가」라는 평가 사이에서 엇갈려 왔다. 도바·후시미 전투 직후 오사카를 떠나 에도로 돌아간 행동은 신하들을 버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면 이 선택이 에도가 전쟁터로 변하는 것을 막았다는 평가도 있다. 이 상반된 평가는 메이지 정부의 정당성, 옛 막부 신하들의 감정, 후대의 역사 서술 등 여러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대정봉환의 성격
대정봉환은 정권을 천황에게 돌려준다는 형식이었지만 그 실질적 의도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뉜다. 정권을 넘기더라도 도쿠가와 가문이 새 체제의 중심으로 남을 수 있다고 계산했다는 견해와, 무력 충돌을 피하려 한 진심이었다는 견해가 있다. 이에 대해 사이고 다카모리 등은 도쿠가와 가문의 영지와 관직을 빼앗는 방향으로 압박했고, 결국 무력 충돌로 이어졌다. 대정봉환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진 도사 번의 역할과 사카모토 료마의 관여 정도도 논쟁이 있다.
프랑스와의 관계와 동아시아
요시노부는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막부 군대의 근대화를 추진했다. 프랑스는 막부를 지지한 반면 영국은 사쓰마와 조슈에 접근했다는 식으로 서양 열강의 관계가 설명되기도 하나, 각국의 정책이 반드시 이런 대립 구도로만 움직인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있다. 한편 1866년 프랑스 함대는 조선 강화도를 공격한 병인양요를 일으켰다. 같은 시기 일본은 정권 교체를, 조선은 서양과의 충돌을 겪고 있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정세의 서로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요시노부는 만년에 사진을 즐기고 대중 앞에 나서지 않는 삶을 살았고, 생전에 구술 기록(『석몽회필기』)이 남았고, 사후에는 공전 편찬 등을 계기로 재평가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요시노부가 만년에 찍거나 찍힌 사진이 다수 남아 있어, 막부 말기의 인물 중 드물게 자신의 일상을 시각 자료로 남긴 사례로도 주목된다. 이런 자료는 그에 대한 평가를 인물사 차원에서 다시 살피는 데 쓰인다.
Sources · 참고 자료
- 『도쿠가와 요시노부 공전』
- 「대정봉환 상표」(18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