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쓰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의 큰 파도」를 그린 우키요에 화가
AI가 작성한 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는 에도 시대의 우키요에 화가입니다. 우키요에는 나무판에 그림을 새겨 종이에 찍어 내는 판화로, 당시 서민들이 즐겨 샀습니다.
호쿠사이는 「후가쿠 삼십육경」이라는 후지산 그림 연작으로 유명합니다. 그중 거대한 파도가 배를 삼킬 듯 솟아오르는 「가나가와의 큰 파도」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그림 가운데 하나입니다.
호쿠사이는 90살까지 살면서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름도 30번 넘게 바꾸었고, 이사도 아주 많이 다녔다고 합니다.
화가로 자라다
호쿠사이는 1760년 에도(지금의 도쿄 스미다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책방에서 일하다가 목판 조각을 배웠고, 열여덟 살 무렵 인기 있던 우키요에 화가 가쓰카와 슌쇼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유파를 배웠고 많은 이름을 사용했으며, 「호쿠사이」라는 이름은 30대 후반 무렵부터 쓰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대표작
1814년부터 그린 『호쿠사이 만화』는 사람과 동물, 풍경 등을 스케치한 그림책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1831년 무렵부터 「후가쿠 삼십육경」을 그려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연작에서 「가나가와의 큰 파도」와 붉은 후지산을 그린 「개풍쾌청」 등이 특히 유명합니다. 인기가 많아서 처음 36점으로 계획했는데 10점이 더 추가되어 모두 46점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들에는 당시 유럽에서 수입된 「프러시안 블루」라는 파란 안료가 쓰였습니다.
해외에 미친 영향
호쿠사이의 작품은 19세기 후반 유럽에 전해져 모네 같은 인상파 화가들과 고흐 같은 후기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작곡가 드뷔시는 「바다」(관현악을 위한 세 개의 교향적 스케치)의 악보 표지에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호쿠사이는 1849년 90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딸 오에이도 화가로 활동하며 아버지를 도왔습니다.
이름을 자주 바꾼 것은 유파를 옮기거나 제자에게 이름을 물려주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이사를 90번 넘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청소를 하지 않아 방이 더러워지면 이사했다는 일화가 알려져 있습니다.
우키요에의 분업 제작
우키요에는 화가 한 사람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밑그림을 그리는 화가, 판목을 새기는 조각가(호리시), 종이에 찍는 인쇄공(스리시), 이를 기획하고 판매하는 출판업자(판모토)가 함께 만드는 상업 미술이었다. 호쿠사이의 이름이 붙은 작품도 이런 분업 체제에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호쿠사이의 작품」이란 화가 개인의 창작인 동시에 시장과 출판업자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큰 파도」는 흔히 쓰나미로 오해되지만, 정확히는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 아래」라는 제목으로 배를 삼킬 듯한 큰 너울을 그린 것이다.
서양과의 관계
프러시안 블루는 18세기에 유럽에서 발명된 안료로, 에도 시대 말기에 수입되어 우키요에에 널리 쓰였다. 호쿠사이는 이 안료를 적극 활용했다. 또한 원근법과 같은 서양 회화의 기법에 관심을 가졌고, 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온 서양 그림책의 영향을 받았다는 견해가 있다. 한편 그의 작품이 유럽의 자포니슴에 영향을 준 정도에 대해서는 평가가 나뉘며, 인상파 화가들이 어떤 작품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개별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딸 오에이와 공동 작업의 문제
호쿠사이의 딸 오에이(応為)는 뛰어난 화가로, 아버지의 작업을 도왔다고 전해진다. 호쿠사이 만년의 작품 일부에 오에이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논의되며, 「호쿠사이 작품」과 「오에이 작품」의 경계는 연구자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조선 통신사 행렬이 일본에서 회화와 판화의 소재로 자주 그려졌다는 점을 통해 당시 서민들이 이웃 나라에 가졌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후가쿠 백경』의 발문에는 70세 이전에 그린 것은 볼 만한 것이 못 되고 73세에 이르러서야 사물의 구조를 조금 알게 되었다는 취지의 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노년까지 성장하려 한 예술가상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된다.
Sources · 참고 자료
- 「후가쿠 삼십육경」(1830년대 초)
- 『호쿠사이 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