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천황
근대 일본의 출발점에 선 천황
AI가 작성한 글
메이지 천황(明治天皇)은 일본이 무사의 시대를 끝내고 근대 나라로 나아가던 때의 임금입니다. 1867년, 열다섯 살 무렵에 임금이 되었고, 그의 시대(1868~1912)를 「메이지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에 일본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철도와 학교가 생기고, 헌법을 만들어 국회도 열었습니다. 에도는 도쿄로 이름이 바뀌었고, 천황도 교토에서 도쿄로 옮겨 왔습니다. 하지만 이 무렵 일본은 이웃 나라와 전쟁도 치렀고, 1910년에는 한국을 병합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아픈 역사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메이지 천황은 1852년 교토에서 고메이 천황의 아들로 태어나 1867년 아버지가 죽자 즉위했습니다. 이듬해인 1868년 막부가 물러나고 왕정복고가 선포되었으며, 「5개조 서약문」을 통해 「널리 회의를 열어 공론으로 결정한다」는 새 정부의 방침을 밝혔습니다. 같은 해 연호를 메이지로 정하고 천황 한 사람에 연호 하나를 쓰는 일세일원제를 시작했습니다. 에도는 도쿄로 이름이 바뀌었고 1869년 천황이 교토에서 도쿄로 옮겨 왔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에 폐번치현(1871), 학제(1872), 징병령(1873), 지조 개정 같은 개혁이 이어졌습니다. 1889년에는 대일본제국 헌법이 공포되었고 이듬해 제국의회가 열렸습니다. 외교에서는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을 치르며 일본이 열강의 하나로 올라섰습니다. 조선과 관련해서는 1876년 강화도 조약,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한국 병합이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천황은 대체로 정치의 전면에 나서기보다 각료와 원로의 결정을 재가하는 위치에 있었고, 지방 순행과 공식 초상(어진영)을 통해 국민에게 모습이 알려졌습니다. 1912년 7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연호는 다이쇼로 바뀌었습니다. 장례일에 육군 대장 노기 마레스케 부부가 뒤따라 목숨을 끊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메이지 시대에는 생활의 모습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1872년 12월 3일을 1873년 1월 1일로 삼아 태양력을 채택했고, 같은 해 신바시와 요코하마 사이에 일본 최초의 철도가 열렸으며, 학제가 공포되어 학교 교육이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메이지 천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두 층위로 나뉜다. 하나는 「천황 친정」이라는 정당화 아래 실제 결정은 사쓰마·조슈 출신 번벌 정치가와 원로가 맡았다는 통치 구조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천황 개인이 얼마나 정치에 관여했는가 하는 문제다. 근대사 연구는 대체로 천황이 각료 회의의 결정을 뒤집는 일은 드물었지만, 원로 사이의 의견이 갈릴 때나 군사·외교의 중요한 결정에서 재가 과정이 정치적 의미를 가졌다고 본다.
천황의 권위는 제도로도 만들어졌다. 1889년 헌법은 천황을 신성불가침한 통치권의 총람자로 규정했고, 1890년 교육칙어는 충군애국을 교육의 기본으로 삼았으며, 지방 순행과 어진영은 천황을 국민이 직접 인식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학계에서는 이를 근대 국가가 「전통」을 새로 구성한 사례로 설명하는 연구가 많다.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그의 재위 기간이 강화도 조약에서 한국 병합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겹친다는 점이 핵심이다. 일본에서는 이 시기를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고 근대화에 성공한 시대로 기억하는 시각이 강하고, 한국에서는 침략과 식민 지배가 시작된 시기로 기억한다. 이 차이는 같은 사건에 대한 평가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어느 쪽의 경험을 중심에 놓느냐의 차이이기도 하므로, 두 기억을 나란히 놓고 읽는 것이 필요하다.
사료로는 궁내청이 편찬한 『메이지천황기』가 기본이지만, 궁내 기관이 편찬한 것이라 천황을 정당화하는 서술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가의 일기와 외교 문서, 상대국 자료를 함께 대조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메이지 천황을 둘러싼 기억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사후에는 도쿄에 메이지 신궁(1920년 창건)이 세워져 국민이 그를 기리는 공간이 되었고, 전후에는 상징 천황제 아래에서 「메이지의 영광」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헌법 아래에서 천황이 「입헌 군주」인지 「절대 군주」인지에 대한 해석도 학자에 따라 달라, 메이지 국가를 전제 정치로 볼 것인지 입헌 국가로 볼 것인지를 가르는 열쇠가 되었다.
Sources · 참고 자료
- 「5개조 서약문」(1868년)
- 『대일본제국 헌법』(1889년)
- 「교육에 관한 칙어」(1890년)
- 궁내청 편 『메이지천황기』(1968~197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