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시게루
전후 일본의 진로를 정한 총리
AI가 작성한 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는 전쟁이 끝난 뒤 일본의 총리를 오래 지낸 정치인입니다. 전쟁에서 진 일본이 다시 일어서던 시기에 나라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그는 「군대에 돈을 많이 쓰기보다 경제를 키우자」는 방침으로 일본을 이끌었습니다. 1951년에는 여러 나라와 강화 조약을 맺어, 일본이 미군의 점령에서 벗어나 다시 독립 국가가 되는 길을 열었습니다. 이 조약에 한국은 참여하지 못했고, 그래서 한국과 일본이 나라 사이의 관계를 바로잡는 일은 그 뒤로도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요시다는 1878년 도쿄에서 태어나 무역상 요시다 가문의 양자가 되어 자랐고, 도쿄 제국대학을 졸업한 뒤 외무성에 들어가 중국 영사와 영국 대사 등을 지냈습니다. 미국·영국과의 협조를 중시하는 외교관이었고,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는 조기 종전을 모색한 일로 1945년 4월 헌병대에 붙잡혀 구금된 적이 있습니다. 패전 직후 외무대신을 맡았고, 1946년 5월부터 여러 차례 총리를 지냈습니다(194647, 194854). 재임 기간을 합치면 약 7년입니다.
그의 정권은 점령기의 개혁과 경제 회복을 이끌었고,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안전보장조약을 체결해 1952년 4월 일본이 독립을 되찾게 했습니다. 미국에 안전 보장을 맡기고 군비를 최소로 하며 경제 부흥에 힘쓰는 방침은 「요시다 노선」으로 불립니다. 1950년에는 경찰예비대(뒤의 자위대)를 창설했습니다.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1952년 시작된 제1차 한일회담이 그의 재임 중 열렸지만 청구권 문제 등으로 교섭이 오래 난항을 겪었습니다. 1967년 세상을 떠났고, 전후 총리 가운데 처음으로 국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요시다는 성격이 완고하면서도 유머가 있었고 「원맨 총리」라고 불릴 만큼 정책 결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전해집니다. 외손자 아소 다로도 훗날 총리를 지냈습니다. 전쟁 뒤 그가 이끈 정부는 토지 개혁과 재벌 해체 같은 점령군의 개혁을 받아들이면서도 경제 재건을 우선했습니다.
요시다 노선은 미국과의 동맹 아래 군사 부담을 낮추고 경제 성장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요약된다. 다만 이 노선이 처음부터 체계적인 「독트린」이었는지, 후대에 정리된 개념인지는 연구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요시다 본인은 재군비를 요구하는 미국의 압력에 대해 헌법 9조와 경제 재건의 필요를 근거로 한계를 두었으나 경찰예비대 창설을 받아들였고, 재군비의 속도와 범위를 놓고 국내 보수 세력과도 갈등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소련이 회의에 참석했으나 서명을 거부했고 중국은 초청되지 않은 「부분 강화」였다. 한국은 연합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조약의 서명국이 되지 못했고, 이는 이후 한일 관계에서 청구권과 영토 문제의 논점이 되었다. 조약 제4조가 일본과 한국 사이의 재산·청구권 문제를 양국 간 특별 약정으로 처리하도록 정한 것이 1965년 청구권 협정의 출발점이었다. 한일회담이 그의 재임 중 시작되었으나 1953년에는 일본 측 수석대표 구보타 간이치로가 식민 통치가 한국에 이익이 되었다는 취지로 발언해(구보타 발언) 회담이 중단되기도 했고, 1952년 한국 정부의 「평화선」 선포도 양국 갈등의 배경이 되었다.
요시다 정권은 전후 보수 정치의 기초를 놓았지만, 반공주의와 미국 중심 외교로 인해 식민 지배와 전쟁 책임을 포함한 전후 처리의 여러 문제를 뒤로 미루었다는 비판도 있다. 반면 패전국이 국제 사회에 복귀하고 경제 대국으로 나아가는 조건을 만든 현실주의 외교로 평가하는 견해도 강하다. 두 평가를 함께 놓고 퇴임 뒤 본인이 펴낸 회고록 『회상 십 년』(1957)이 자기 정당화의 성격을 띤다는 점도 고려해 읽어야 한다.
요시다 노선이 냉전 초기 미국의 전략과 일본의 이익이 맞아떨어진 결과인지, 요시다 개인의 선택이었는지도 논쟁이다. 또한 헌법 개정과 재군비를 원한 하토야마 이치로, 기시 노부스케 등과의 대립은 전후 보수 정치가 「경무장·경제 중시」와 「자주 헌법·재군비」로 갈라지는 계보를 만들었다는 설명이 일반적이다.
Sources · 참고 자료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
- 「미일안전보장조약」(1951년)
- 요시다 시게루 『회상 십 년』(195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