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토쿠 태자
불교와 대륙 문화로 나라의 틀을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
AI가 작성한 글
쇼토쿠 태자(聖徳太子)는 약 1,400년 전 일본의 여왕 스이코 천황을 도와 나라를 이끈 사람으로 전해집니다. 태자는 매우 똑똑해서 한꺼번에 열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태자는 관리들에게 재주와 공로에 따라 높낮이를 정해 주는 제도를 만들고, 「서로 화합하라」는 뜻이 담긴 17조 헌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불교를 널리 퍼뜨렸고, 바다 건너 중국의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대등하게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나라에 있는 호류지는 태자와 인연이 깊은 절입니다. 다만 태자가 정말 이 모든 일을 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이야기가 많습니다.
쇼토쿠 태자는 574년 요메이 천황의 아들로 태어났고 본래 이름은 우마야도노 왕(황자)이었습니다. 592년 말 스이코 천황이 즉위하고 이듬해인 593년부터 조카인 그가 천황을 대신해 정치를 맡았다고 『일본서기』가 전합니다. 당시 정치는 유력 호족 소가노 우마코와 함께 이끌었고, 태자는 587년 소가씨와 모노노베씨의 싸움에도 참가했다고 합니다.
전해지는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603년 관위 12계를 정해 가문이 아니라 능력과 공적에 따라 관리를 세우려 했고, 604년에는 「화합을 귀하게 여기라」로 시작하는 17조 헌법을 정했습니다. 607년에는 오노노 이모코를 수나라에 보내,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라는 국서를 전했습니다. 수의 황제 양제가 무례하다고 불쾌해했다는 기록이 『수서』에 있습니다. 불교에도 힘써 이카루가에 호류지(법륭사)를, 나니와에 시텐노지를 세웠다고 전합니다.
대륙 문화와의 교류에는 한반도 사람들이 큰 몫을 했습니다. 태자의 스승으로 고구려 승려 혜자와 백제 승려 혜총이 이름을 남겼고, 610년에는 고구려 승려 담징이 채색과 종이·먹 만드는 법을 전했다고 『일본서기』가 적었습니다. 622년 태자가 죽자 사람들이 크게 슬퍼했다고 하며, 이후 태자를 받드는 신앙이 퍼졌습니다.
태자가 죽은 뒤 소가씨의 독주가 심해지면서, 태자의 아들 야마시로노오에노오 왕 일가는 643년 소가노 이루카의 공격으로 멸망했다고 『일본서기』가 전합니다. 태자를 받드는 신앙은 이후 크게 퍼졌고, 호류지 몽전(유메도노)은 태자를 기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쇼토쿠 태자에 관한 거의 모든 서술은 『일본서기』에서 나오며, 그 서술에 후대의 이상화가 짙다는 비판이 오래 이어져 왔다. 「쇼토쿠 태자」는 사후에 붙은 시호로서 8세기 무렵부터 쓰였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고, 생전에는 우마야도노 왕 등으로 불렸다. 그래서 근래 일본 교과서에는 「우마야도노 왕(쇼토쿠 태자)」처럼 이름을 병기하는 경우가 늘었다. 또 「태자」라는 지위가 당시에 제도로 존재했는지, 정말 「섭정」이라 부를 만한 지위에 있었는지도 논쟁이 있다.
17조 헌법에는 「국사(国司)」처럼 태자 시대보다 뒤에 정비된 용어가 들어 있다는 지적이 있어, 태자의 직접 저작으로 볼 수 있는지 의견이 갈린다. 관위 12계는 고구려·백제의 관등 제도를 참고했다는 설이 있다. 다만 607년 견수사와 국서는 『수서』 왜국전에도 실려 있어, 이때 왜가 수와 대등한 외교를 모색했다는 점은 중국 측 사료로 확인된다.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이라는 표현이 대등을 뜻하는지 방위를 말한 것인지는 해석이 나뉜다.
호류지는 『일본서기』가 670년 화재로 모두 탔다고 전하고, 현재의 서원가람은 그 뒤 재건된 것이라는 견해가 정설에 가깝다. 금당 벽화를 담징이 그렸다는 전승은 『일본서기』의 610년 기록만으로는 뒷받침되지 않는다. 금당 벽화는 1949년 화재로 크게 손상되었다. 태자의 실제 역할은 소가씨의 권력과 스이코 천황의 역할을 함께 고려해야 하며, 대륙 문화 수용을 이끈 소가씨 정권의 성과가 태자에게 돌려진 면이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호류지 금당의 석가삼존상 광배에 새겨진 글에 622년 태자가 죽었다는 취지의 기록이 있어, 이 연도를 뒷받침하는 금석문 자료로 자주 인용된다. 다만 이 명문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이런 이유로 학계에서는 쇼토쿠 태자를 실재했으나 후대에 과장된 인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Sources · 참고 자료
- 『일본서기』
- 『수서』 왜국전
- 『상궁성덕법왕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