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무 천황
도다이지 대불을 세우게 한 나라 시대의 천황
AI가 작성한 글
쇼무 천황(聖武天皇)은 약 1,300년 전 나라 시대의 일본 임금입니다. 이 무렵 무서운 전염병이 돌고 흉년이 들어 백성이 몹시 힘들어했습니다.
쇼무 천황은 불교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전국에 절을 짓게 하고, 도읍 나라에 청동으로 만든 아주 커다란 부처님 대불을 만들게 했습니다. 이 대불은 지금도 나라의 도다이지에 있습니다.
대불을 만드는 데는 많은 사람이 힘을 보탰습니다. 승려 교키는 백성을 이끌고 일했고, 바다 건너 당나라와 인도에서 온 스님도 도왔다고 합니다.
쇼무 천황은 701년 몬무 천황의 아들로 태어나 724년에 즉위했습니다. 어머니는 유력 귀족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딸이었고, 황후로 세운 고묘시도 후히토의 딸입니다. 황족이 아닌 여성이 황후가 된 것은 이때가 처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재위 중에는 재난이 이어졌습니다. 729년 나가야왕의 변으로 정치가 흔들렸고, 735~737년 천연두가 퍼져 조정을 이끌던 후지와라 네 형제가 모두 죽었습니다. 740년에는 후지와라노 히로쓰구가 규슈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천황은 도읍을 구니쿄, 나니와쿄 등으로 옮겨 다니다가 745년 나라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쇼무 천황은 불교로 나라를 안정시키려 했습니다. 741년 전국에 국분사와 국분니사를 세우라고 명했고, 743년 비로자나불(노사나불) 대불 조성을 발원했습니다. 승려 교키가 백성을 모아 공사를 도왔으며, 대불은 749년 금속을 부어 만드는 일을 마쳤습니다. 쇼무는 같은 해 딸 고켄 천황에게 자리를 물려주었고, 752년 도다이지에서 성대한 개안 공양이 열렸습니다. 인도 승려 보다이센나가 개안을 맡았고, 인도와 당 등에서 온 승려도 참석했다고 전해집니다. 756년 쇼무가 죽자 황후는 그가 아끼던 물건을 도다이지에 바쳤는데, 이것이 쇼소인 보물의 시작입니다.
이 시기의 문화는 연호를 따서 덴표(天平) 문화라고 부르며, 도다이지 대불과 쇼소인 보물이 그 대표입니다. 쇼소인에는 당과 서역, 신라에서 온 물품이 함께 보존되어 있어 당시 나라가 동아시아 교류의 종착지 가운데 하나였음을 보여 줍니다.
쇼무 천황 시기는 율령 국가가 안정에서 동요로 넘어가던 때이다. 후지와라 4형제가 죽은(737) 뒤 다치바나노 모로에가 정권을 이끌었고, 740년 후지와라노 히로쓰구의 난이 일어나자 천황은 수도를 구니쿄로 옮기고 나니와쿄, 시가라키궁을 거쳐 745년에야 나라로 돌아왔다. 이 잦은 천도는 정치 불안을 보여 주며, 조영 사업의 재정 부담으로도 이어졌다. 이런 위기 속에서 천황은 불교로 나라를 지키는 진호국가 정책을 펼쳤고, 국분사 건립과 도다이지 대불 조영은 그 상징이었다.
대불 조영은 개인의 신앙만이 아니라 국가 사업이었다. 『속일본기』는 743년 조서에서 천하의 부와 권세를 가진 것은 자신이라고 하면서도, 풀 한 줄기나 흙 한 줌으로 돕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대로 하게 하라는 취지를 전한다. 실제로는 전국에서 동원된 노동력과 구리·수은·금이 들어갔고, 이 부담이 백성에게 컸다는 평가가 있다. 한편 민간에서 포교하던 승려 교키를 끌어들인 것은 조정이 승려 통제 정책을 바꾼 것으로 해석된다. 대불 주조에는 백제계 도래인의 후손 구니나카노무라지 기미마로 등 기술자가 큰 몫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토지 정책에서는 743년 간전영년사재법이 개간지의 사유를 인정해 개간을 촉진하려 했으나, 귀족과 사원의 장원이 커지는 계기가 되어 공지공민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쇼무는 스스로를 「삼보의 종」이라 부르며 749년 출가한 천황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불 조영에 국가가 얼마나 기울었는지, 이 정책이 성공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린다.
국제 관계에서도 이 시대는 활발했다. 752년 신라 왕자 김태렴이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왔다고 『속일본기』가 전하며, 쇼소인에는 신라와의 물품 거래를 적은 문서와 신라 계통 물품이 남아 있다. 754년에는 당의 고승 감진이 어려운 항해 끝에 도착해 도다이지에서 쇼무 상황에게 계를 주었다. 도다이지는 1998년 「고도 나라의 문화재」의 일부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Sources · 참고 자료
- 『속일본기』
- 『도다이지 요록』과 관련 사료
- 쇼소인 문서(매신라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