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노 우마코
아스카 시대 조정을 이끈 소가씨의 우두머리
AI가 작성한 글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는 약 1,400년 전 일본에서 가장 힘이 셌던 호족의 우두머리입니다. 스이코 천황과 쇼토쿠 태자를 도와 정치를 이끌었습니다.
그때 일본에는 불교를 받아들이자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마코는 불교를 받아들이자는 쪽이었고, 반대하던 모노노베 가문과 싸워 이겼습니다. 그 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큰 절 아스카데라를 세웠습니다. 이 절을 지을 때 백제에서 온 기술자들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마코는 힘이 너무 커져서 임금까지 마음대로 하려 했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소가노 우마코는 소가노 이나메의 아들로, 스이코 천황 때까지 약 반세기 동안 조정의 중심에 있던 호족입니다. 소가씨는 대대로 왕실의 재정과 새로 들어온 기술자·도래인들을 다루며 힘을 키웠습니다. 우마코의 아버지 이나메 때부터 소가씨는 불교를 받아들이자고 주장해, 전통 신앙을 지키려는 모노노베씨와 대립했습니다.
587년 우마코는 쇼토쿠 태자 등 여러 황자와 함께 모노노베노 모리야를 무찔렀습니다. 이 싸움에서 이긴 소가씨는 조정의 권력을 사실상 손에 넣었습니다. 592년에는 자신과 뜻이 맞지 않던 스슌 천황이 살해되었고, 『일본서기』는 우마코가 이 일을 지시했다고 전합니다. 이어 조카인 스이코 천황을 즉위시키고(592년 말 즉위, 593년 태자의 정치 참여 시작) 쇼토쿠 태자와 함께 정치를 이끌었습니다.
우마코는 588년경부터 일본 최초의 본격 사원으로 알려진 아스카데라(호코지)를 세웠습니다. 이때 백제가 승려와 기와 만드는 장인 등을 보내 주었다고 『일본서기』가 적고 있어, 백제와의 교류가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626년 우마코가 죽은 뒤 소가씨의 힘은 손자 이루카 때 더 커졌으나, 645년 을사의 변으로 무너졌습니다.
605년에는 고구려의 대흥왕이 황금 300냥을 보내 아스카데라의 대불 조성을 도왔다고 『일본서기』가 전합니다. 이 절의 본존 석가여래 좌상(아스카 대불)은 여러 번 손상되고 수리되었으나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우마코는 집 정원에 작은 섬을 만든 연못이 있어 「섬의 대신(시마노오오미)」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우마코는 소가씨가 대신(大臣) 자리를 이어 가며 조정을 좌우하게 만든 인물이다. 587년 모노노베씨 멸망 이후 대련(大連) 계통이 사라져 소가씨의 경쟁자가 없어진 점이 중요하다. 592년 스슌 천황이 살해된 사건은 신하가 천황을 죽인 예로, 『일본서기』는 소가씨에 비판적인 논조로 이를 전한다. 이 서술은 을사의 변(645) 이후 소가 본종가를 악역으로 그린 뒤 편찬된 기록이라는 점을 고려해 읽어야 한다. 즉 『일본서기』의 소가씨 서술 상당수가 반소가씨 입장에서 조정되었을 가능성이 지적된다.
우마코가 쇼토쿠 태자와 함께 620년 『천황기』와 『국기』를 편찬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 책들은 전하지 않는다. 우마코의 무덤으로 유력하게 꼽히는 것이 나라현 아스카의 이시부타이 고분으로, 거대한 돌로 만든 방형 무덤이다. 소가씨의 출신을 두고는 오래전부터 백제계 도래인이라는 설(소가노 마치를 백제의 목만치와 같은 인물로 보는 설)이 있으나, 야마토의 토착 호족이라고 보는 견해가 학계에서 더 널리 받아들여진다.
우마코와 쇼토쿠 태자의 관계는 협력과 견제가 섞여 있었다고 본다. 두 사람은 함께 불교와 대륙 문화를 받아들이는 정책을 밀고 나갔으나, 태자가 죽은 뒤 소가씨의 독주가 심해졌다는 서술이 많다. 이 시대의 실제 정치 구조가 소가씨 중심이었다는 점은 태자의 역할을 재평가하는 논의와 이어진다. 소가씨가 도래인 기술자와 백제·고구려 문화에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은 아스카데라 창건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소가씨 지배기에 조정의 재정과 토지 관리, 외교 실무에서 도래인이 큰 몫을 했다는 점은 소가씨 정권의 성격을 이해하는 열쇠로 자주 언급된다. 을사의 변으로 소가 본종가가 무너진 뒤에도 소가씨의 일부 분가는 조정에서 계속 활동했다. 소가씨가 대신 자리를 세습하고 딸들을 천황의 왕비로 들이는 방식으로 외척 정치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뒤의 후지와라씨와 비교되기도 한다.
Sources · 참고 자료
- 『일본서기』 스슌기·스이코기
- 『상궁성덕법왕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