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무 천황
헤이안쿄로 도읍을 옮긴 천황
AI가 작성한 글
간무 천황(桓武天皇)은 794년에 도읍을 헤이안쿄(오늘날의 교토)로 옮긴 임금입니다. 이 도시는 그 뒤 1,000년 넘게 일본의 도읍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전에 도읍이던 나라(奈良)에서는 큰 절의 승려들이 정치에 끼어드는 일이 많았습니다. 간무 천황은 새로운 곳에서 새 정치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나가오카쿄로 옮겼다가, 10년 뒤 다시 헤이안쿄를 지었습니다.
간무 천황은 동북 지방의 에미시 사람들과 싸운 임금이기도 하고, 승려 사이초와 구카이가 당나라에 가서 공부하도록 도운 임금이기도 합니다. 간무 천황의 어머니는 백제 왕의 후손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간무 천황은 737년 황족 시라카베왕(뒷날 고닌 천황)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다카노노 니이가사는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속일본기』에 전하는 도래계 씨족 출신이라, 원래는 황위 계승과 거리가 먼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치 다툼 끝에 781년 즉위했습니다. 즉위 뒤 동생 사와라 친왕이 황태자가 되었으나, 785년 후지와라노 다네쓰구가 암살되는 사건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폐위되어 유배 도중 죽었습니다.
간무는 784년 나가오카쿄로 도읍을 옮겼다가 794년 헤이안쿄로 다시 옮겼습니다. 이렇게 도읍을 옮긴 것은 나라의 큰 절 세력에서 벗어나려는 뜻이 있었다고 봅니다. 도읍을 옮긴 뒤에는 지방 관리가 바뀔 때 일을 넘겨받는 과정을 감독하는 감해유사를 두어 행정 기강을 잡았고, 백성에게 부담이 컸던 군단제를 폐지했습니다(792). 동북 지방에서는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를 세이이타이쇼군으로 보내 에미시를 정벌했고, 802년에는 에미시의 우두머리 아테루이가 항복했습니다. 804년에는 사이초와 구카이가 당으로 가는 견당사 배가 출발했습니다.
간무는 중국식 제천 의례인 교사를 지내 새 왕통의 정통성을 내세우려 했다고 전해집니다. 새 도읍의 조영에는 도래계 씨족 하타씨가 큰 몫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 나라의 큰 절들을 헤이안쿄로 옮기지 못하게 하고, 도지(東寺)와 사이지(西寺) 두 절만 도읍 안에 세우게 했습니다. 간무의 재위 기간에는 연호 엔랴쿠(782~806)가 쓰여 이 시기의 정치를 엔랴쿠의 개혁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간무 천황은 나라 시대 말 혼란을 수습한 개혁 군주로 평가된다. 그가 속한 황통은 그때까지 이어지던 덴무계가 아니라 덴지 천황의 손자 고닌 천황의 계통으로, 천황 계통이 바뀐 것이 그의 정치 성격에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도읍을 나가오카를 거쳐 헤이안으로 옮긴 것도 나라의 사원 세력과 귀족을 벗어나 새 왕통의 도읍을 세우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나가오카쿄 조영 책임자 후지와라노 다네쓰구가 암살된 사건(785)과 사와라 친왕의 폐위, 그 뒤 잇따른 가족의 병과 죽음은 간무를 크게 괴롭혔고, 이를 사와라의 원령 탓으로 여겨 800년 사와라에게 스도 천황이라는 호칭을 추존했다. 이것이 헤이안 시대 원령 신앙의 이른 사례이며, 헤이안쿄 천도의 이유로 이 원령을 피하려 한 것을 꼽기도 한다.
동북 정벌은 아테루이가 이끄는 에미시 세력과의 전쟁이었고,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가 진압했다. 『속일본기』와 『일본후기』는 조정 측 시각으로 쓰였으므로 에미시 쪽의 사정은 알기 어렵다. 이 전쟁은 율령 국가의 영역 확대이자 그곳 주민에게는 가혹한 정복이었다는 양면적 평가를 받는다. 805년에는 후지와라노 오쓰구와 스가노노 마미치가 「군사(에미시 정벌)와 조영(헤이안쿄 건설)」을 둘러싸고 논쟁했고(덕정상쟁), 간무는 오쓰구의 의견을 받아들여 두 사업을 모두 중단했다. 이는 재정 부담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
한국과의 관계로는 『속일본기』가 전하는 모후 다카노노 니이가사의 계보가 있다.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는 기록으로, 2001년 아키히토 천황이 기자회견에서 이 기록에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고 말해 한일 양국에서 관심을 모았다. 이는 8세기 일본 지배층에 도래계 씨족이 깊이 들어와 있었음을 보여 주는 한 사례이다.
새 도읍에 나라의 대사원을 옮기지 않고 도지와 사이지만 세우게 한 점은 사원 세력을 통제하려 한 그의 정책을 보여 준다.
Sources · 참고 자료
- 『속일본기』
- 『일본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