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미코
『위지』에 이름이 남은 야마타이국의 여왕
AI가 작성한 글
히미코(卑弥呼)는 약 1,800년 전 일본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야마타이국의 여왕입니다.
그때 일본에는 작은 나라가 매우 많았고 오랫동안 서로 싸웠습니다. 사람들은 싸움을 끝내려고 히미코를 왕으로 세웠다고 합니다. 히미코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점을 쳐서 나라의 뜻을 정하는 일을 했습니다. 사람들 앞에는 거의 나서지 않았고, 동생이 곁에서 나랏일을 도왔다고 전해집니다.
히미코는 중국의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친위왜왕」이라는 이름과 금도장, 거울 같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야마타이국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지금도 몰라서 학자들이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히미코는 3세기 중국 역사서 『위지』 왜인전에 나오는 야마타이국의 여왕입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왜에서는 처음에 남자 왕이 다스렸으나 나라들 사이에 오랫동안 난리가 이어졌고, 여러 나라가 힘을 모아 히미코를 왕으로 세우자 싸움이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히미코는 「귀도(鬼道)」라 불린 주술로 사람들을 이끌었습니다. 나이가 들도록 남편이 없었고, 남동생이 정치를 도왔다고 합니다. 왕이 된 뒤로는 모습을 보인 일이 드물었고, 시녀 천 명이 곁에 있었으며 남자 한 사람만이 음식을 나르고 말을 전하러 드나들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궁궐에는 누각과 성책이 있고 무기를 든 사람들이 지켰다고 합니다.
위나라와의 교류가 이 나라의 위상을 잘 보여 줍니다. 히미코는 238년(239년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에 사신을 보냈고, 위의 황제는 「친위왜왕」이라는 칭호와 금인, 붉은 비단, 동경 100장 등을 내렸습니다. 이후에도 사신이 오갔고, 남쪽의 구노국과 싸움이 벌어지자 위는 사람을 보내 격문을 전하며 히미코 편을 들었습니다. 히미코가 죽자 지름이 100여 걸음인 큰 무덤을 만들고 노비 100여 명을 함께 묻었으며, 뒤이어 세운 남자 왕에게 나라가 따르지 않아 다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열세 살 소녀 이요를 왕으로 세워 나라가 안정되었다고 합니다.
야마타이국이 어디였는지는 규슈 북부라는 설과 기나이(야마토)라는 설이 맞서 있어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히미코가 받은 「친위왜왕」의 금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후쿠오카현 시카노시마에서 나온 「한위노국왕」 금인은 서기 57년 후한이 노국의 왕에게 내린 것으로 알려진 별개의 유물입니다.
히미코에 관한 자료는 사실상 『위지』 왜인전 하나에 기대고 있다. 『위지』는 3세기 후반 진수가 엮은 『삼국지』의 위서 동이전에 속하며, 왜인전은 대방군에서 왜로 가는 경로와 나라 이름, 풍속을 함께 적었다. 『일본서기』는 히미코라는 이름을 직접 쓰지 않고, 진구 황후 조에서 『위지』의 「왜의 여왕」 기사를 인용해 진구 황후와 겹쳐 놓았다. 이는 8세기 편찬자들의 해석이지 히미코의 실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아니다.
가장 큰 논점은 야마타이국의 위치이다. 『위지』가 적은 방위와 거리를 그대로 따르면 규슈 북부에 이르지만, 방위가 어긋났다고 보면 기나이(야마토)가 된다. 규슈설과 기나이설은 각각 유적과 고분 자료를 근거로 삼아 왔고, 일본 고대사에서 가장 오래된 미해결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이 논쟁은 국가의 성립 과정을 어떻게 볼지와도 이어진다. 기나이설이 옳다면 3세기에 이미 넓은 연합이 야마토를 중심으로 있었다는 뜻이고, 규슈설이 옳다면 이후 야마토 정권과의 관계를 따로 설명해야 한다.
위에서 받은 「동경 100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견해가 갈린다. 일본 각지 고분에서 나오는 삼각연신수경을 위나라가 내린 거울로 보는 설과, 일본에서 만들었다고 보는 설이 맞서 왔다. 히미코의 무덤 역시 확정되지 않았고, 나라현 하시하카 고분을 후보로 드는 견해가 있으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 『위지』가 전하는 연대도 판본과 인용에 따라 238년과 239년으로 나뉜다.
한국과의 관계는 사료 안에 뚜렷이 나타난다. 왜의 사신은 한반도 서북부의 대방군을 거쳐 위로 갔고, 『위지』는 대방군에서 해안을 따라 배로 한국(韓國)을 지나 왜에 이르는 길을 적었다. 3세기의 왜가 한반도 남부와 대방군을 통해 대륙과 교류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다만 이 기록의 지명 비정에는 학설이 많아 세부 노정은 확정하기 어렵다.
Sources · 참고 자료
- 『위지』 왜인전(『삼국지』 위서 동이전)
- 『일본서기』 진구 황후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