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와 하기
메이지 유신을 이끈 조슈의 중심 하기의 조카마치와 산업혁명 유산, 야마구치현의 볼거리
AI가 작성한 글기준 2026-09
하기(萩)는 야마구치현 북쪽 해안에 있는 옛 성곽 도시로, 에도 시대에 조슈 번의 중심이었습니다. 무사 저택의 흙담이 이어지는 거리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곳은 메이지 유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 나온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상가 요시다 쇼인이 제자를 가르친 학당 쇼카손주쿠도 하기에 있습니다. 하기의 관련 유산은 2015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의 일부로 세계유산에 올랐습니다. 야마구치현 서쪽 끝의 시모노세키는 복어 요리로 알려진 항구 도시입니다.
하기의 조카마치
하기는 에도 시대 조슈 번의 성 아래 마을(조카마치)이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모리 가문이 이곳에 성을 쌓았다고 전해지며, 무사 저택 구역과 상인 구역의 옛 골격이 지금도 거리에 남아 있습니다. 흙담이 이어지는 골목은 대표적인 풍경으로 소개됩니다.
메이지 유신과 요시다 쇼인
하기는 막부 말기 조슈 번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시다 쇼인은 1857년 쇼카손주쿠를 이끌며 신분에 관계없이 제자를 가르쳤습니다. 쇼인 본인의 생애와 사상은 요시다 쇼인 글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이 학당에서 배운 것으로 알려진 인물 가운데에는 다카스기 신사쿠 등이 있습니다.
산업혁명 유산
2015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제철·제강, 조선, 석탄 산업」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하기에서는 하기 반사로, 에비스가하나 조선소 터,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 유적, 하기 조카마치, 쇼카손주쿠의 다섯 곳이 구성 자산입니다. 이 유산 전체는 규슈 등 여러 지역에 걸친 23개 자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일본이 서양 기술을 도입해 단기간에 산업화한 과정을 보여 준다는 취지입니다. 한국 측의 문제 제기는 심화에서 다룹니다.
야마구치의 다른 지역
- 시모노세키: 간몬 해협에 면한 항구 도시로, 복어 요리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역에서는 복어를 「후쿠」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이와쿠니: 긴타이쿄라는 아치형 목조 다리로 알려진 성하마을입니다.
- 야마구치 시내: 옛 오우치 가문의 도시로, 「서쪽의 교토」로 불립니다.
- 아키요시다이: 석회암 대지와 동굴로 알려진 곳입니다.
교통과 참고
하기 시내는 버스나 자전거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교통 안내를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인접한 시마네현의 쓰와노도 옛 성하마을로 알려져 있습니다. 쓰와노는 신야마구치와 JR 야마구치선으로 이어지며, 하기와 쓰와노 사이의 이동 수단은 교통 안내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조슈 번과 하기
하기는 도쿠가와 막부 아래에서 조슈 번의 정치 중심이었고, 이곳에서 자란 인물들이 막부 말기 정국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 사쓰마 번과 함께 막부 타도 세력의 중심이 되었다는 설명이 일반적이며, 조슈 출신은 이후 메이지 정부에서 군사와 관료 조직의 주요 위치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하기는 「유신의 고향」이라는 이미지를 관광의 핵심 자원으로 삼아 왔다. 한편 「번벌 정치」라는 표현은 특정 출신 지역의 세력이 정부를 좌우했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쇼카손주쿠와 평가의 양면
요시다 쇼인의 교육 활동은 그가 직접 가르친 기간이 짧아 과대평가라는 지적이 있는 한편, 제자 다수가 이후 정치와 군사 지도자가 된 점을 들어 높이 평가되기도 한다. 쇼인이 남긴 구상 가운데에는 조선과 대륙으로의 진출을 논한 대목이 있어, 이후 일본의 대외 정책과의 연관이 논의된다. 이에 대한 평가는 한국과 일본, 연구자들 사이에서 다르며, 개인의 구상과 국가 정책의 관계는 자료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조슈 출신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한국 통감을 지냈다는 사실도 한국에서는 이 지역의 역사를 볼 때 함께 언급되곤 한다.
세계유산 등재와 논란
2015년 등재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은 1850년대부터 1910년에 이르는 시기의 산업화를 다룬다. 하기에서는 하기 반사로, 에비스가하나 조선소 터,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 유적, 하기 조카마치, 쇼카손주쿠의 다섯 곳이 구성 자산이다. 등재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일부 시설에서 1940년대 조선인 강제 동원이 있었다는 점을 들어 문제를 제기했고, 양국 협의 끝에 일본 정부가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 아래에서 강제로 노동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혀 유산은 합의로 등재되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이 표현이 법적 의미의 강제노동 인정은 아니라는 입장을 냈고, 2021년 세계유산위원회는 이행이 불충분하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한국 측이 문제로 든 시설은 하시마 탄광,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 미이케 탄광, 야하타 제철소 등 규슈의 자산이며, 하기의 자산은 막부 말기의 기술 도입과 교육에 해당한다. 대상 시기 밖의 동원 역사를 어떻게 전하느냐가 쟁점이며, 자세한 내용은 나가사키 글에 있다.
보존과 지역의 과제
하기는 조카마치의 경관을 유지하면서 거주와 관광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속에서 전통 건조물의 유지와 교통 접근성이 과제로 거론된다. 현재의 관광 및 인구 통계는 자료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asOf 2026-09).
Sources · 참고 자료
-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Sites of Japan's Meiji Industrial Revolution: Iron and Steel, Shipbuilding and Coal Mining」(2015년 등재)
- 하기시, 「明治日本の産業革命遺産 萩市の5つの構成資産」(city.hagi.lg.jp/site/sekaiisan/h19508.html)
- 내각관방, 「明治日本の産業革命遺産」 관련 자료(cas.go.jp/jp/sangyousekaiisan/pdf/h270705_siryou2.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