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와 미야지마
원폭의 기억과 바다 위 도리이가 함께 있는 도시
AI가 작성한 글기준 2026-09
히로시마는 일본 서쪽 세토 내해 연안의 대도시입니다. 강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흐르고, 시내에는 노면 전차가 다닙니다.
1945년 8월 6일 이 도시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었습니다. 이후 도시를 재건했으며, 지금은 평화를 생각하는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파괴된 건물의 모습을 남겨 둔 원폭 돔과 평화 기념 공원이 있습니다.
인근 섬 미야지마(宮島)에는 바다 위에 서 있는 큰 붉은 도리이(신사 입구의 문)가 있습니다. 밀물 때는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썰물 때는 가까이 걸어갈 수 있으며, 섬에는 사슴도 살고 있습니다.
히로시마의 대표 음식은 오코노미야키와 굴입니다.
히로시마는 주고쿠 지방 최대 도시이고 히로시마현의 현청 소재지입니다. 오타강 삼각주 위에 발달해서 다리와 강이 많고, 시내에는 노면 전차(히로덴)가 다닙니다.
평화의 도시
1945년 8월 6일 원자 폭탄이 투하되어 도시의 중심부가 파괴되었고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지금 도시의 평화기념공원에는 평화기념자료관, 위령비, 「평화의 불」, 원폭 돔이 있습니다. 원폭 돔은 폭심지 가까이에서 건물 뼈대가 남은 것으로 1996년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8월 6일에는 매년 평화기념식이 열립니다.
대표 볼거리
- 평화기념자료관: 피폭 당시의 유품과 자료를 전시합니다.
- 히로시마 성: 원폭으로 파괴되어 1958년 복원되었습니다.
- 슛케이엔: 축소 경관 정원입니다.
- 미야지마의 이쓰쿠시마 신사: 바다 위 도리이로 유명하고 1996년 세계유산이 되었습니다.
- 미야지마 오모테산도 상점가에서 파는 모미지 만주
음식
히로시마풍 오코노미야키는 반죽 위에 양배추·고기·계란·면을 층층이 겹쳐 굽는 방식이 특징입니다. 세토 내해 굴은 구이·튀김·솥밥으로 먹습니다. 도시 안에는 붕장어 덮밥(아나고메시)과 쓰케멘(히로시마식)도 있습니다.
가는 방법
한국에서는 인천·부산에서 히로시마 공항으로 가는 직항 노선이 운영되는 시기가 있었고, 공항은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 버스를 이용합니다. 신칸센으로 오사카·후쿠오카에서도 갑니다. 미야지마는 JR과 페리를 갈아타고 갑니다.
한국과의 비교
히로시마에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기리는 위령비가 평화기념공원 안에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히로시마로 건너가거나 동원된 한국인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히로시마는 근현대 일본의 군사 도시라는 성격과 원폭 피해 도시이자 평화 운동의 상징이라는 성격이 겹친 도시이다.
성립과 근대 군사 도시
전국 시대 모리 가문이 오타강 삼각주에 성을 쌓으며 도시가 시작되었고, 에도 시대에는 아사노 가문의 조카마치로 번영했다. 메이지 시대에는 청일전쟁(1894~1895) 때 대본영이 히로시마에 설치되어 군사 도시로서의 성격이 강화되었다. 이 때문에 1945년의 원폭 투하 때 도시에는 군 관련 시설이 많았다.
1945년 8월 6일과 기억의 정치
1945년 8월 6일 오전 미군이 히로시마에 우라늄 폭탄을 투하했다. 사망자 수는 조사 방법과 기간 정의에 따라 추계가 다르며, 1945년 말까지의 사망자를 대략 십수만 명 정도로 추산하는 자료가 많다. 정확한 수치는 히로시마시·평화기념자료관의 공식 자료를 확인해야 한다. 전후 일본은 피폭 피해를 국민적 기억으로 만들었고, 히로시마는 「평화도시」로서 핵무기 폐기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 기억이 「피해」 중심으로 구성되어 왔다는 비판도 있다. 전쟁 당시 일본의 가해와 식민 지배를 함께 기억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또한 미국에서는 원폭 사용의 정당성을 두고 지금도 의견이 갈린다.
한국인 피폭자
당시 히로시마에는 일제강점기에 노동력으로 동원되었거나 이주한 한국인이 상당수 거주했고, 그중 많은 사람이 피폭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 피폭자는 귀국 후 오랫동안 일본 정부의 피폭자 지원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고, 출국하면 수당 지급이 중단되는 문제 등을 둘러싸고 소송이 이어졌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1970년 평화공원 바깥에 건립된 뒤 1999년 공원 안으로 옮겨졌다.
현재의 도시
산업 면에서는 자동차(마쓰다의 본사가 히로시마에 있다)와 조선·철강 등 제조업 기반이 있다. 2016년 미국 대통령이 현직으로는 처음 히로시마를 방문했고, 2023년에는 G7 정상회의가 열렸다(asOf 2026-09). 미야지마의 이쓰쿠시마 신사는 헤이안 시대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후원해 확장한 것으로 전해지며, 조수 간만을 이용한 건축이라는 점이 세계유산 평가의 핵심 가운데 하나이다.
Sources · 참고 자료
- 히로시마 평화문화센터, 『広島平和記念資料館総合図録―ヒロシマをつなぐ―』
- 세계유산 목록(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히로시마 평화기념비(원폭 돔), 이쓰쿠시마 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