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
조총을 활용해 통일의 문을 연 전국 다이묘
AI가 작성한 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약 450년 전 일본에서 전국 통일의 길을 연 사람입니다. 작은 영주의 아들이었지만 아주 대담하고 새로운 생각을 가졌습니다.
1560년에는 훨씬 큰 군대를 가진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오케하자마에서 기습으로 물리쳐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 뒤 조총을 크게 활용해서 강한 적들을 이겼고, 시장에서 장사를 자유롭게 하게 해서 도시를 활발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통일을 눈앞에 두고 1582년 혼노지라는 절에서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의 습격을 받아 죽었습니다.
오와리의 젊은 영주
노부나가는 1534년 오와리(지금의 아이치현 서부)에서 영주 오다 노부히데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는 괴상한 옷차림과 행동으로 「바보 영주」라 불렸다고 전해집니다. 아버지가 죽은 뒤 집안 내분을 정리하고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물리쳐 이름을 알렸습니다.
천하포무와 상경
1567년 미노를 손에 넣은 뒤 기후로 거점을 옮기고 「천하포무(天下布武)」라는 글자가 새겨진 도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1568년에는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들어 교토에 들어갔고, 1573년에는 요시아키를 쫓아내 무로마치 막부를 사실상 끝냈습니다. 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는 조총을 활용해 다케다 가쓰요리의 군대를 무찔렀다고 전해집니다.
새로운 정책
관문의 통행세를 없애 상업을 활발하게 했고, 아즈치성 아래 도시에서는 특권 상인 조합의 독점을 없애는 정책(라쿠이치 라쿠자)을 폈습니다. 반면 저항하는 세력에게는 냉혹했습니다. 1571년 히에이잔 엔랴쿠지를 불태웠고, 이후 잇코 종 신도들의 저항(잇코잇키)도 강하게 진압했습니다. 1576년부터 비와호 가에 아즈치성을 짓기 시작했고,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혼노지의 변
1582년 노부나가는 서쪽의 모리 씨를 치러 가던 도중 교토 혼노지에 머물다가,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의 습격을 받아 자결했습니다. 미쓰히데가 왜 반역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혁명가」 이미지의 재검토
노부나가는 「중세의 파괴자」로 그려지는 일이 많지만, 근래 연구는 이런 이미지가 후대의 군기물과 소설, 근대 사관의 영향이라고 비판한다. 장사를 자유롭게 한 정책은 노부나가만의 발명이 아니라 이전 전국 다이묘들도 시행하던 것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울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는 두견새 구는 에도 후기에 만들어진 이야기다. 「바보 영주」 일화는 『신초코키』에 실려 있으나 과장이 섞였을 수 있다. 사료로는 가신 오타 규이치가 기록한 『신초코키』가 비교적 신뢰도 높은 사료로 쓰이지만 주군을 높이는 경향이 있고, 선교사 프로이스의 『일본사』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노부나가의 성격을 기록해 상호 보완이 필요하다.
나가시노 전투와 조총
나가시노 전투에서 3천 정의 조총을 세 줄로 교대 사격했다는 설명은 오랫동안 통설이었으나, 『신초코키』에는 조총의 숫자가 1천 정 정도로 적혀 있고 세 줄 교대 사격은 후대 기록에서 나왔다는 비판이 있다. 조총이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정되지 않으나 그 사용법과 규모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이 조총은 이후 히데요시 시대 조선 침략(임진왜란)에서 일본군의 주력 무기가 되었다.
히에이잔과 혼노지에 관한 논쟁
1571년 히에이잔 소각은 수천 명의 사망자를 냈다고 전해지지만, 발굴 조사에서 대규모 소각의 흔적이 뚜렷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어 규모를 두고 논쟁이 있다. 혼노지의 변의 배경은 미쓰히데의 개인적 원한설, 조정이나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배후설, 조소카베 씨 관련설 등 여러 가지가 제시되어 왔고 결정적 증거는 없다. 노부나가는 스스로를 「제6천마왕」이라 칭했다는 이야기(프로이스가 전함)와, 자신을 신격화했다는 별개의 이야기도 있지만 이를 어디까지 사실로 볼지는 논쟁이 있다.
노부나가의 통일 사업은 이후 히데요시와 이에야스에게 이어졌다. 「노부나가가 떡을 치고 히데요시가 반죽하고 이에야스가 앉아서 먹었다」는 비유가 전해지지만, 이는 결과를 아는 후대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며 세 사람의 정책의 연속성과 차이를 함께 살펴야 한다.
Sources · 참고 자료
- 오타 규이치 『신초코키(信長公記)』
- 루이스 프로이스 『일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