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역대 최장 재임을 기록한 총리, 아베노믹스와 안보법제로 논쟁을 남긴 정치인
AI가 작성한 글기준 2026-09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20062007년과 20122020년 두 차례 일본 총리를 지낸 정치인입니다. 두 번째 재임을 포함한 총 재임 기간은 일본 헌정 사상 가장 길었습니다. 「아베노믹스」라 불린 경제 정책과 안전 보장 정책의 전환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정책을 둘러싼 지지와 비판이 크게 갈린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한국과는 2015년 위안부 문제 합의를 맺었지만, 이후 강제징용 판결 등으로 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2022년 7월 선거 유세 중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베는 1954년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외할아버지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이고, 아버지는 외무대신을 지낸 아베 신타로입니다. 1993년 중의원에 처음 당선되었고, 2006년 9월 52세로 전후 최연소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건강 문제로 이듬해 9월 사임했습니다. 2012년 12월 다시 총리가 되어 2020년 9월까지 약 8년간 재임했습니다.
두 번째 정권의 중심은 아베노믹스였습니다. 대담한 금융 완화, 재정 출동, 성장 전략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려는 정책입니다. 안전 보장에서는 2013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만들고 특정비밀보호법을 성립시켰으며, 2015년에는 제한적인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안보 관련 법제를 통과시켰습니다. 헌법 개정은 끝내 이루지 못했습니다. 외교에서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을 내세웠고, 2016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2013년 12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한국과 중국이 강하게 반발했고, 2015년 8월 종전 70주년 담화에서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해 12월에는 한일 외무장관이 위안부 문제 합의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양국 관계는 크게 나빠졌습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이 끝났다는 입장이고, 한국에서는 개인 청구권이 남아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2020년 8월 지병(궤양성 대장염)을 이유로 사임 의사를 밝혔고 후임으로 스가 요시히데가 이어받았습니다. 2022년 7월 8일 나라시에서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 중 총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베 정권은 2012년 12월부터 2020년 9월까지 이어져 연속 재임과 통산 재임 모두 역대 최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안정은 국정 선거에서의 연이은 승리, 총리 관저에 인사와 정책 결정 권한이 집중된 구조, 야당의 분열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분석이 많다. 반면 사학 스캔들로 불린 모리토모·가케 학원 문제와 공문서 처리를 둘러싼 논란처럼 권력 집중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아베노믹스는 엔화 약세와 주가 상승, 고용 개선을 가져왔다는 평가와, 물가 목표 달성이 불충분했고 실질 임금과 재정 건전성 문제를 남겼다는 평가가 병존한다. 소비세는 2014년에 8%, 2019년에 10%로 올랐다. 안보 정책에서는 2014년 각의 결정으로 헌법 해석을 바꾸고 2015년 평화안전법제로 이를 법제화해,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으로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는 경우 등에 한정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했다. 지지하는 쪽은 억지력 강화로 보았고, 비판하는 쪽은 헌법 9조와 입헌주의에 어긋난다고 주장해 국회 앞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역사 인식과 한일 관계는 그의 정치에서 가장 논쟁적인 영역이다. 2015년 종전 70주년 담화는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이라는 표현을 담았으나, 아베 자신이 사죄한 것이 아니라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하는 형식이며 다음 세대에게 사죄를 계속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대목이 포함되어 반응이 갈렸다. 2015년 12월 한일 합의는 일본 정부의 책임 표명과 총리의 사죄,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출연하는 내용을 담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확인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피해자 의견 수렴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컸고, 이후 한국 정부가 재단을 해산했다.
2018년 강제징용 판결 이후 2019년 일본 정부는 반도체 관련 소재의 수출 관리를 강화했고, 한국은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GSOMIA) 종료를 통보했다가 유예하는 등 갈등이 확대되었다. 일본 정부는 이를 안보상의 관리 조치라 설명했고, 한국은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고 비판했다.
2022년 총격 사건 이후 국장(國葬, 정식 명칭은 국장의)이 치러졌으나, 그 결정 절차와 비용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그의 정치적 유산은 안보·경제·역사 인식 각각에서 평가가 나뉘며, 지금도 논의가 진행 중이다.
Sources · 참고 자료
- 首相官邸「歴代内閣」(第90代, 第96~98代 安倍晋三)
- 「平和安全法制整備法」·「国際平和支援法」(2015年成立)
- 「内閣総理大臣談話」(2015年8月14日)
- 「日韓外相共同記者発表」(外務省, 2015年12月28日)
- 安倍晋三『美しい国へ』(文春新書, 2006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