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요에와 도자기
그림과 그릇으로 보는 일본 공예
AI가 작성한 글
**우키요에(浮世絵)**는 에도 시대에 서민들이 즐겨 사던 목판화입니다. 배우, 미인, 풍경 등을 그렸습니다. 「우키요(浮世)」는 원래 괴로운 세상을 뜻하던 말이 에도 시대에 「즐겨야 할 지금 세상, 요즘 풍속」이라는 뜻으로 바뀐 것입니다. 파도 그림으로 유명한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큰 파도」도 우키요에입니다. 한 번 새긴 나무판으로 같은 그림을 여러 장 찍을 수 있어 값이 싸고 인기가 높았습니다.
도자기도 일본의 대표적인 공예입니다. 도자기를 **야기모노(焼き物)**라고 부르며, 아리타 도자기, 비젠 도자기처럼 지역마다 이름난 산지가 있습니다.
우키요에
우키요에는 그림을 그린 사람(에시), 판을 새기는 사람(호리시), 종이에 찍는 사람(스리시), 그리고 기획과 판매를 맡은 출판업자(한모토)가 나누어 일하는 목판화로 대량 제작되어 서민도 살 수 있는 값에 팔렸습니다. 여러 가지 색을 겹쳐 찍는 다색 판화(니시키에)가 18세기 중반에 등장하면서 화려한 그림이 가능해졌습니다. 소재는 인기 가부키 배우(야쿠샤에), 아름다운 여성(비진가), 각지의 경치(풍경화), 스모 선수 등이 많았습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후가쿠 36경」,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도카이도 53차」, 기타가와 우타마로의 미인화가 대표적입니다. 19세기에는 서양으로 건너가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도자기
일본 도자기는 지역마다 특징이 다릅니다. 규슈의 아리타·가라쓰 등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온 도공들의 영향으로 도자기 생산이 발전했다고 설명됩니다. 아리타에서 만든 자기는 이마리 항구를 통해 유럽에도 수출되어 「이마리 자기」로 불렸습니다. 이 밖에도 붉은빛이 도는 비젠 도자기, 기와와 그릇으로 유명한 세토(일본어로 도자기를 「세토모노」라고 부르는 유래가 되었습니다), 너구리 조각상으로 알려진 시가라키 등이 있습니다. 이것은 한일 교류사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부분입니다.
한국과의 비교
한국에도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민화 같은 회화·공예의 전통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는 서민의 생활을 담았다는 점에서 우키요에와 비교되지만, 손으로 그린 그림이 중심이고 대량 인쇄가 아니라는 점이 다릅니다. 재료와 기술의 교류가 있었던 만큼 서로 닮은 점과 다른 점을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대량 복제 예술의 사회적 의미
우키요에는 「한 점뿐인 원본」이 아니라 여러 장을 찍는 복제 예술이라는 점에서 근대적 대중 미술의 성격을 갖는다. 출판업자가 기획과 판매를 맡고 화가·조각가·인쇄공이 분업하는 구조였다는 점이 이후 만화·애니메이션 산업의 분업 구조와 비교되기도 한다. 가부키 배우의 초상은 오늘날의 브로마이드 같은 상품이었고, 여행 안내서가 나오던 시기에는 풍경화가 유명 관광지의 이미지를 널리 퍼뜨렸다는 설명도 있다. 서양의 「자포니슴」에서 우키요에가 주목받은 이유는 구도의 대담함과 평면적 색면에 있다는 해석이 있으나, 영향의 정도는 작가마다 다르게 평가된다. 1856년 무렵 프랑스 판화가 브라크몽이 도자기 포장재로 쓰인 『호쿠사이 만가』를 보고 주목했다는 이야기가 자주 소개되지만, 포장지 부분은 뒷날 덧붙은 일화일 수 있다는 의문이 제기되어 있다.
자포니슴과 근대의 일본 미술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일본 공예품이 출품된 뒤 프랑스에서 관심이 커졌고, 1870년대에는 일본 미술에 대한 관심을 가리키는 「자포니슴」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메이지 정부가 처음 공식 참가한 1873년 빈 만국박람회도 서양의 관심을 넓혔다고 알려져 있다. 반 고흐가 히로시게의 작품을 모작한 것이나 모네·드가 등의 작품에 나타난 일본풍 소재가 자주 사례로 언급된다. 다만 우키요에가 일본 안에서는 서민 오락으로 여겨져 미술로서의 평가를 늦게 받았고, 많은 걸작이 해외로 나가 외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기술 교류와 서술의 신중함
아리타 자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조선 도공 이삼평이 규슈에서 자기용 흙을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연도와 세부 사정은 자료마다 다르다. 이 이야기가 한일 양국에서 각자의 맥락으로 강조되어 온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전쟁으로 조선의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갔다는 사실과 이후 그들이 일본 도자기 산업에 큰 영향을 준 사실은 분리해서 기억할 필요가 있다.
Sources · 참고 자료
- 가쓰시카 호쿠사이 『후가쿠 36경(冨嶽三十六景)』
- Siegfried Bing 편 『Le Japon artistique』(1888~1891년)